송경원·2023-05-09

'큐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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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연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영화와 나의 관계가 바뀐다. 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걸작이 정작 나에게 시큰둥하게 다가온다고 이상할 건 없다. 아직 그 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간 영화가 나만의 걸작이 되는 일도 그리 드물지 않다. 그렇게 자신만의 보석함을 늘려가는 즐거움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행복일 것이다.

 

 

한편 어떤 영화는 시간과 함께 익어가는 운명을 타고난다. 시간의 풍화를 받지 않는 걸작을 다시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시대를 앞서간 영화가 당대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발굴되는 것 역시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게 몇몇 영화는 시대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정확히는 당신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다. 물론 모든 영화가 이런 행운을 거머쥐는 건 아니다. 그만큼의 깊이와 존재감, 그리고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품고 있어야 가능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는 그런 드문 종류의 영화 중 하나다.

<큐어> 4K 리마스터링 버전이 7월6일부터 극장에서 상영된다. 그동안 영화제나 특별전을 통해 국내 관객을 만난 적은 있지만 정식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호러 스릴러의 걸작 <큐어>는 그동안 여러 장르영화에 영감을 안기며 구로사와 기요시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1997년 일본 개봉 이후 무려 25년 만의 국내 개봉이지만 이 영화는 시간에 빛바래기는커녕 더욱 농밀하게 익었다는 느낌을 안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시대를 반영하거나 사람들의 평가를 바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25년이 지난 지금 세대와도 통하는 보편성을 지닌 영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한국 관객을 만나는 소감을 밝혔다.

그 말처럼 <큐어>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고집과 결기가 온전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독특한 실험영화나 작가주의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외형만 놓고 보면 차라리 호러 스릴러 장르의 공식에 충실한 상업영화에 가깝고, 당대에도 그렇게 소비되었다. 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스릴러 공식에 맞춰 만든 장면과 장면 사이 결국 스며 나오고 마는 순간이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라는 창작자가 세계를 인지하는 감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로망포르노영화로 영화계에 입문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공포·스릴러·탐정영화의 외양을 빌리되 강렬한 자의식을 흉내낼 수 없는 호흡으로 소화했다. 평온함 뒤에 숨겨진 불안,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 알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불온한 감정이 화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큐어>가 시대를 초월해 완전 새로운 영화로 거듭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큐어>는 의문의 자살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반복될 명제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자 근원적 공포를 건드리는 묵시록적 상상력이다.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는 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목격하는 일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야 보인다면 당신의 세계가 그만큼 깊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이 영화를 처음 본다면 제대로 만든 스릴러가 어떤 건지 확인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다양한 형식의 스토리텔링 영상이 넘쳐나는 지금,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주는 흔들리지 않는 증거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구로사와 기요시의 시작점이자 정점인 <큐어>는 당신이 목격함으로써 ‘오늘의 영화’로 새롭게 태어난다.

 

- 25년 만에 <큐어>가 한국에서 정식 상영된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때부터 여러 차례 관객과의 대화(GV)를 통해 많은 관객과 만난 걸로 알고 있다.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옛 기억이 자극되고 생각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 텐데.

=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관객이 젊고 여성 관객이 많다. 이런 점은 일본과 확실히 차이가 있다. 한국 관객은 영화 자체를 즐긴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활기찬 분들이 이렇게 오래된 영화를 열심히 봐주신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기쁘고 감사하다. 25년 만에 영화를 스크린에서 다시 마주하니 여러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역시 나는 이 작품을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고 만든 것은 아니구나 하는 점이 드디어 명확해졌다. (웃음) 어떤 면에서는 부끄럽기도 하다. 그 시절의 나는 그때의 감각과 그때 내가 가진 열의로만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다시 기억해내게 되었다

◈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과 변하지 않는 것

- ‘감각’이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게 감독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카메라가 있어야 할 위치를 찾는 역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고맙다. 이번에 아주 다양하고 많은 질문을 받은 덕분에 희미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중 어떤 분이 “<큐어>에는 왜 이렇게 많은 병원이 나오는가”라고 의아해하며 물었던 질문이 떠오른다. 이제껏 한번도 받아본 적도, 예상한 적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듣고 보니 실제로 병원이 많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찍는 나도 솔직히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큐어>는 도쿄 전체가 무대가 되는 영화다. 그 질문을 한 관객은 이 영화에서 도쿄 전체가 병원처럼 보인다는 감상을 밝혔는데, 매우 신선한 의견이고 나 역시 납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관객에 의해 영화가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되어가는구나 싶어 설렌다.

- <큐어>의 원제는 ‘전도자’였던 걸로 안다. 그런데 도쿄 전체가 병원이라는 해석을 덧붙이니 ‘큐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고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 맞다. 제목을 보고 이 영화를 정신적 치료 행위와 연결해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영화의 마지막에 타카베 형사(야쿠쇼 고지)가 마치 실제로 치료를 받은 듯이 굉장히 말끔하고 상쾌한 느낌으로 식사하는 장면이 있다. 이제까지 쌓인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정말로 치료받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예전에 처음 상영할 때도 관객이 그 장면에 대해 왜 그렇게 됐는가, 어떤 과정이 있었는가, 실제로 치료받은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한 게 새삼 생각난다.

-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특히 무서웠다. 타카베 형사가 너무 만족스럽게 식사하는데 누군가가 밥을 잘 먹는 장면을 보면서 이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 든다는 게 또 이상했다. 이후 이어지는 상황에서 웨이트리스가 칼을 들고 뭔가 일을 저지르려는 순간 장면이 끝난다. 과감한 편집과 생략이다.

= 사실 그 이후 장면을 좀더 길게 끝까지 찍었다. 웨이트리스가 칼을 들고 주방 뒤쪽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나온 선배 같은 여성이 있다. 그 여성을 찔러서 피투성이로 만드는 장면까지 촬영했다. 그걸 다 넣으면 쉽긴 한데, 또 살인이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는 결론으로 고착될 우려가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쇼킹한 라스트를 노리고 촬영했지만, 그 장면을 넣는 순간 영화 전체가 축소되는 것 같았다. 결국 고심 끝에 전부 잘라냈다. 지금도 이 편집이 옳았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큐어>의 대부분은 그런 확신할 수 없는 선택과 판단의 결과다.

- 예전 영화를 다시 보고 이야기한다는 건 기록을 보고 기억을 수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령 타카베가 쿠니오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를 잡으려고 최면술사의 오래된 건물에 발을 디디는 순간 비디오가 나오는 걸로 기억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전축에서 소리만 나오는 걸 보고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감독님도 본인의 기억과 실제 장면이 다르다고 느낀 장면이 있는지 궁금하다.

= 있는 정도가 아니라 새롭게 덧붙인 기억이 매우 많다. (웃음) 내 머릿속에서 <큐어>는 살인으로 시작하는 영화였다. 처음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 타카베가 차를 타고 그 사람을 잡으러 출동하는 장면에서 타이틀이 나온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각본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부인이 정신과에서 상담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거다. 각본과 다르게 편집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마도 이런 선택들이 <큐어>라는 결론으로 이끈 게 아닌가 싶다. 기본적으로 첫 사건이 일어나고 해변에 마미야가 등장하고, 그다음에 또 사건이 일어나면서 타카베가 범인을 쫓는, 큰 덩어리의 순서는 기억한다. 다만 그 사이사이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에 관해서는 기억과 다른 장면이 많았다. 또 하나, 내 생각보다 영화의 전개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 확실히 요즘 스릴러영화와 비교해도 호흡이 상당히 빠르다.

= 다행이다. 연출 당시 가장 신경 쓴 요소 중 하나가 속도다. 추적하는 형사의 긴박감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싶었다. 다만 지금 다시 보니 신기한 호흡이 꽤 있다. 마미야를 만난 후에 뭔가 일상적인 묘사가 좀더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사건이 일어나 체포하고 바로 탈출하는 장면이 나오는 식으로 빠른 템포로 전개돼 스스로도 무척 놀랐다. 컷과 컷 사이에 여유가 별로 없다고 할까. 그 대신 사건과 사건 사이의 호흡이 의외로 꽤 길다. 최근 영화들은 사건을 파도처럼 쉴 틈 없이 제시해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느낌이 들고, 나 역시 최근에는 이러한 작법을 많이 따라가는 중이다. 대중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큐어>를 만들 당시에는 일부러 그런 작법을 다 파괴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게 새삼 기억났다.

- <큐어>를 다시 보며 가장 놀란 부분이 옛날 영화 같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 보는 관객도 고전영화가 아니라 신작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개봉 당시 반응과 지금 관객의 반응에 차이가 많은가.

= 예전 일본 개봉 당시에는 관객과 직접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영화제에 출품한 것도 아니고, 일본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작품도 아니다. 그래서 관객의 반응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언론에서는 독특한 사이코 스릴러 장르 영화다 하는 정도의 평이 나온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이 영화에 어떤 해석을 붙이거나 작가의 의도를 읽으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지금 관객이 영화를 다시 볼 땐 <큐어> 이후에 연출한 영화들이 도리어 길잡이가 되어 해석이 더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의 다른 영화에서 <큐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할 것이다.

- 최근작과 비교하면 <큐어>에는 확실히 거칠고 낯설고 고집스러운 장면이 꽤 있다.

= 맞다. 최근작일수록 내가 관객에게 좀더 친절해지는 것 같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숏을 만들 때의 엄밀함이다. 일단 하나의 숏 안에서 얼마나 농밀하게 표현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결해서 하나의 숏을 구성할 것인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공백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를 무척 오래 고민하는 편이다. 초기작에는 확실히 어떤 고집과 결기의 농도가 좀더 짙다. <큐어>를 만들던 시절에는 순수한 사이코 스릴러 장르 영화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욕망이 아주 강했다. 장르의 법칙을 최소한만 지키면 더 설명이 필요 없고 더 보여줄 것도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지금은 <큐어> 같은 순수

한 장르영화를 만들 기회도 적어지고 만들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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